사람을 못 뽑아서 AI에게 회사 일을 맡겨봤다
사람을 한 명 더 뽑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뽑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건비를 늘릴 여력이 없었고, 설령 뽑는다 해도 가르치는 데 몇 달이 든다. 그 몇 달을 버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걸 해봤다. 사람 대신 AI에게 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났다. 무엇이 넘어갔고 무엇이 안 넘어갔는지 적어둔다.
넘어간 일
매일 아침 계좌 잔고를 정리하는 일. 은행에서 오는 입출금 문자를 자동으로 읽어 계좌별 잔액표를 만들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보내준다. 예전에는 은행 앱을 여섯 번 열었다. 지금은 아침에 표가 와 있다.
월마감 자료를 모으는 일. 매출과 인건비와 지출 자료가 각각 다른 곳에 있었고, 그걸 하나로 옮겨 적는 게 사흘 걸렸다. 지금은 반나절이다. 시간이 줄어든 것보다 중요한 건, 매달 같은 기준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옮겨 적으면 그달의 컨디션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흔들린다.
회의 녹음을 회의록으로 만드는 일. 회의 중에 받아 적는 사람은 회의에 집중하지 못한다. 지금은 녹음만 하고, 정리된 회의록이 나중에 온다.
공고를 매일 확인하는 일. 입찰이나 지원사업 공고는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매일 사이트 다섯 곳을 들어가 보는 건 아무도 오래 못 한다. 지금은 새 공고가 뜰 때만 알림이 온다.
공통점이 있다. 정해진 규칙이 있고, 매번 똑같이 반복되고, 틀리면 바로 티가 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사람이 하면 지겹고 실수가 나온다.
안 넘어간 일
판단. 이 거래처를 정리할지, 이 단가를 받아들일지, 이 사람을 계속 데려갈지. AI는 자료를 정리해 주고 선택지를 늘어놓아 주지만, 고르는 건 결국 내 몫이다. 골라달라고 해본 적도 있는데, 답이 다 그럴듯해서 오히려 더 헷갈렸다.
사람 관리. 누가 지쳐 있는지, 누가 그만둘 것 같은지는 표정을 봐야 안다. 이건 데이터로 안 온다. 온다 해도 이미 늦은 뒤다.
최종 검토. AI가 만든 보고서를 그대로 내보낸 적이 있는데, 틀린 건 없었지만 쓸모가 없었다. 맥락을 아는 사람이 마지막 30퍼센트를 채워야 문서가 살아난다.
몇 달 뒤에 남은 것
기대했던 건 시간이었다. 실제로 남은 건 조금 달랐다.
하루가 무너지는 횟수가 줄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계획을 세워도 오후면 다 어그러졌다. 잊고 있던 마감이 튀어나오고, 확인 안 한 숫자가 문제를 일으켰다. 지금은 그런 게 미리 잡힌다. 일이 줄었다기보다, 일이 갑자기 터지는 일이 줄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걸 붙이려면 결국 내가 우리 회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자동화하려면 절차를 글로 적어야 하는데, 적어보니 여태 내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절반이었다. 그게 진짜 문제였다는 걸 그때 알았다.
시작한다면
거창한 것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은행 문자 하나로 시작했다.
매주 반복하는 일 중에 제일 지겨운 것 하나를 고르면 된다. 지겹다는 건 규칙이 단순하다는 뜻이고, 규칙이 단순하면 넘기기 쉽다. 그 하나가 돌아가는 걸 보고 나면 다음은 알아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