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를 확인하려고 은행 앱을 여섯 번 열었다
법인 계좌가 여섯 개다. 은행은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자금이 빠듯한 시기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잔고를 봤다. 앱을 열고, 로그인을 하고, 계좌를 누르고, 다시 나와서 다음 앱을 열었다. 여섯 번. 그러고 나서 숫자 여섯 개를 머릿속으로 더했다. 그날 결제를 넘길 수 있는지 없는지가 그 합계에서 나왔다.
십오 분쯤 걸리는 일이었다. 십오 분이 아까웠던 건 아니다. 매일 아침 그 십오 분이 하루의 첫 기분을 정해버리는 게 문제였다.
데이터는 이미 오고 있었다
어느 날 문자함을 내려보다가 알았다. 은행은 거래가 생길 때마다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그 문자에는 거래 후 잔액이 적혀 있다.
앱을 여섯 번 여는 동안, 내 폰에는 이미 그 숫자가 다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았을 뿐이다.
자동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보통 뭔가 대단한 걸 새로 만들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실제로 굴러간 건, 이미 오고 있는 걸 주워 담은 쪽이었다.
만든 것
구조는 단순하다.
- 폰에 오는 은행 문자를 메일함으로 자동 전달한다.
-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각에 스크립트가 그 메일을 읽는다.
- 은행별 문장에서 계좌번호와 잔액을 뽑아 계좌별 최신 잔액표를 만든다.
- 그 표를 메신저로 보낸다.
코드는 AI에게 시켜서 짰다. 나는 문자 예시를 몇 개 보여주고 “여기서 잔액이랑 계좌를 뽑아라”라고 말했을 뿐이다. 어려운 부분은 코드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이 숫자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내가 설명하는 것이었다.
안 되던 것들
깔끔하게 한 번에 되진 않았다.
은행마다 문장이 다르다. 잔액을 어디에 적는지, 계좌번호를 몇 자리나 가려서 보여주는지가 다 다르다. 읽는 규칙을 은행 수만큼 따로 만들어야 했다.
한 은행은 문자가 아니었다. 카드 형태의 알림으로 와서 문자를 감시하는 장치에 아예 안 잡혔다. 며칠 동안 그 계좌만 조용해서 이유를 몰랐다. 결국 문자가 아니라 알림을 읽는 방식으로 따로 우회했다.
거래가 없는 계좌는 갱신되지 않는다. 대출 계좌처럼 몇 달씩 움직임이 없는 곳은 문자가 안 오니 잔액도 안 바뀐다. 이건 자동으로 안 되는 게 맞다고 보고 수동으로 남겨뒀다. 전부 자동으로 만들려다 보면 대개 전부가 멈춘다.
시간이 남은 게 아니었다
기대한 건 아침 십오 분이었다. 실제로 남은 건 다른 것이었다.
매일 같은 형식으로 본다. 손으로 확인할 때는 급한 계좌만 보고 지나가는 날이 있었다. 지금은 여섯 개가 매일 같은 순서로 온다. 그러니 어제와 뭐가 달라졌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숫자 하나가 아니라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보기 싫은 날에도 온다. 이게 제일 컸다. 자금이 안 좋을수록 잔고를 안 보게 된다. 확인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보면 마음만 무거우니까. 그런데 안 보는 동안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제는 안 보려고 해도 아침에 표가 와 있다. 피할 수 없게 만들어 둔 셈이다.
시작점은 대개 작다
거창한 시스템을 알아보기 전에, 이미 우리 회사로 들어오고 있는데 아무도 안 읽는 데이터가 뭔지부터 찾아보면 좋겠다.
문자, 자동으로 오는 메일, 매달 같은 양식으로 받는 명세서. 그런 게 하나씩은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그게 은행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