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큰 계약을 따내고, 1억을 잃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을 기억한다.
물량이 컸다. 우리 규모에서는 한 번에 들어오기 어려운 양이었고, 이걸 잡으면 다음 해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단가를 낮춰달라고 했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마진율은 떨어지지만 양이 많으니 절대 금액으로는 남는다. 그 계산은 맞았다. 종이 위에서는.
2년 뒤에 그 사업을 접었다. 남은 건 1억이 넘는 손실이었다.
종이 위에 없던 것들
접고 나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하나씩 뜯어봤다. 단가를 깎은 게 문제였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그게 아니었다. 단가는 방아쇠였고, 총알은 다른 데 있었다.
첫째, 주말이 사라졌다. 물량이 평일에 다 안 들어갔다. 토요일에 사람을 써야 했고, 주말 인건비는 평일과 단가가 다르다. 계약할 때 이 비용은 계산에 없었다. 없었던 게 아니라, 생각을 안 했다.
둘째, 직원들이 지쳤다. 주말 근무를 로테이션으로 돌렸다. 처음 몇 달은 다들 견뎠다. 반년이 지나자 표정이 달라졌다. 사기가 떨어지면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가 떨어지면 다시 사람을 더 써야 한다. 이건 엑셀에 칸이 없는 비용이다.
셋째, 물건이 사라졌다. 분실률이 예상을 크게 넘었다. 없어진 만큼 다시 샀다. 재구매 비용이 쌓이는 속도가 마진이 쌓이는 속도보다 빨랐다. 이 시점부터는 일을 할수록 손해였다.
넷째, 손익을 늦게 봤다. 이게 제일 아프다. 위 세 가지는 6개월쯤이면 숫자로 드러났을 것이다. 나는 2년을 끌었다. 이미 들어간 투자가 아까웠고, 조금만 더 하면 돌아설 것 같았다.
아까워서 못 끊는 마음
지나고 보니 손실의 절반은 시작할 때 만들어졌고, 나머지 절반은 끊지 못해서 만들어졌다.
끊지 못한 이유를 솔직히 적으면 이렇다. 이미 설비를 샀다. 사람을 뽑았다. 거래처에 약속을 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지금까지 쓴 돈이 다 사라진다.
그런데 이 생각 자체가 함정이었다. 이미 쓴 돈은 접든 계속하든 돌아오지 않는다. 접으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계속했기 때문에 사라진 돈이 더 늘었을 뿐이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만들어 둔 목록이 있다. 큰 건이 들어오면 흥분하기 전에 이것부터 채운다.
- 할인율이 마진율을 어디까지 깎는가 — 몇 퍼센트 깎았는지가 아니라, 깎은 뒤 마진이 아래 항목들을 흡수할 수 있는지를 본다.
- 주말·야간·잔업 인건비 — 물량을 기존 근무시간에 다 소화할 수 있는지 시간 단위로 따진다. 못 하면 그 차액을 원가에 넣는다.
- 분실·파손·재구매율 — 물건이 오가는 사업이면 반드시 넣는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대개 실제가 더 크다.
- 직원 사기와 이직 가능성 — 숫자로 못 잡히니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일을 1년 하면 누가 그만둘까.” 이름이 떠오르면 위험 신호다.
- 기존 사업 잠식 — 새 물량 때문에 기존 고객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지.
그리고 하나 더. 시작하는 날 손절 기준을 적어둔다. 누적 손실이 얼마가 되면 접는다고 숫자로 적고, 3개월마다 그 숫자를 확인한다. 한창일 때 정해야 한다. 손실이 쌓인 뒤에 정하려고 하면 그때는 이미 판단이 흐려져 있다.
그래서 대형 수주가 나쁜가
아니다. 나쁜 건 대형 수주가 아니라, 대형 수주 앞에서 계산을 대충 하는 습관이다.
큰 건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들뜬 상태에서는 안 좋은 숫자가 잘 안 보인다. 그때 옆에서 “주말 인건비는요?”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없다. 사장이 스스로 물어야 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다섯 줄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이다. 그 반나절을 아끼려다 2년과 1억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