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한 곳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처음 거절당했을 때는 서류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서류가 어떻게 부족한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니, 설명해 줬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창구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여기는 우리 같은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구나.
그 뒤로 한동안 그 기관 이름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다시 필요해진 날
몇 해 뒤에 자금이 정말 안 좋아졌다. 매달 말일이 다가오면 계산기를 두드렸고, 두드릴 때마다 답이 안 나왔다. 은행은 이미 다 알아봤다. 남은 카드가 없었다.
그때 그 기관이 다시 떠올랐다.
전화를 걸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이유는 논리적이지 않았다. 한 번 안 된 곳이니 또 안 될 거라는 계산이 절반, 또 거절당하기 싫다는 마음이 절반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후자가 더 컸다.
조건이 달라져 있었다
전화를 걸고 나서 알게 된 게 있다. 그 사이에 우리 회사가 달라져 있었다.
처음 갔을 때는 매출 규모도, 거래처도, 보여줄 실적도 지금과 달랐다. 기술과 관련해 정리해 둔 자료도 없었다. 몇 해 동안 우리는 그걸 만들어 왔다. 만들려고 만든 게 아니라, 살려고 하다 보니 쌓인 것들이었다.
거절은 “당신 회사는 안 됩니다”가 아니었다. “지금 조건으로는 안 됩니다”였다. 그 두 문장의 차이를 나는 몇 해 뒤에야 알았다.
두 번째는 됐다. 처음 요청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됐고, 그 과정에서 인증도 하나 받았다. 그 자금이 그해를 넘기게 해줬다. 지금 돌아보면 회사의 방향이 바뀐 지점이 거기다.
끊을 것과 다시 갈 곳
나는 못 끊어서 크게 손해를 본 적이 있다. 적자 나는 사업을 2년 끌다가 1억 넘게 잃었다. 그래서 손절을 빨리 해야 한다는 걸 몸으로 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것과 반대처럼 보인다. 포기하지 않아서 잘된 이야기니까.
한동안 이 둘이 내 안에서 충돌했다. 언제는 빨리 끊으라고 하고, 언제는 계속 두드리라고 하고. 지금은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끌수록 손실이 쌓이는 것은 끊는다. 운영 중인 적자 사업, 손해 보는 거래. 이건 하루를 더 끌면 하루치가 더 나간다.
한 번 시도에 비용이 거의 안 드는 것은 다시 간다. 융자 신청, 인증, 지원사업. 다시 서류를 쓰는 것 말고는 드는 게 없고, 되면 판이 바뀐다.
거절당한 기관에 다시 가는 건 두 번째에 속한다. 잃을 게 자존심밖에 없다.
서랍에 넣어둔 것들
한 번 반려된 서류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거기 적힌 사업 계획은 그때의 우리 회사다.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사이에 뭐가 늘었는지가 보인다. 매출이든, 거래처든, 사람이든.
지금도 서랍에 몇 개 들어 있다. 아직 조건이 안 됐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