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곱씹는 게 나쁜 줄 알았다
새벽에 이미 끝난 일을 다시 계산해 본 적이 있다.
계약은 벌써 끝났고, 손실은 이미 났고, 되돌릴 방법도 없다. 그런데도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숫자를 두드린다. 그때 그 조건을 안 받았으면 지금 어땠을까. 한 번 두드리면 답이 나오는데, 그 답이 나와도 잠은 안 온다.
지나간 일에 매이는 건 안 좋은 습관이라고들 한다. 털어내라고, 앞을 보라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년을 노력했는데 잘 안 됐다. 성격이 그렇게 생겼다.
두 종류가 있었다
한동안은 이걸 그냥 고쳐야 할 버릇으로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가지가 섞여 있다는 걸 알았다.
하나는 같은 자리를 도는 것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이 질문은 답이 없다. 답이 없으니 계속 돈다. 돌 때마다 그때의 내가 조금씩 더 멍청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는 게 없고 피곤만 하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가는 것이다. 질문이 다르다. 그때 내가 무엇을 몰랐나. 지금 돌아보면 어떤 신호가 있었나. 다음에 비슷한 게 오면 무엇을 미리 정해둬야 하나. 같은 사건인데 던지는 질문이 다르면 다른 데로 간다.
문제는 그 둘이 새벽 두 시에는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적으면 갈린다
그래서 방법을 하나 정했다. 곱씹을 거면 적는다.
노트든 메모장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머릿속에서 굴리지 않는 것이다. 적으려고 하면 문장을 만들어야 하고, 문장을 만들려면 “그때 무슨 조건이 있었고, 내가 뭘 보고 결정했는지”를 순서대로 써야 한다. 그 작업 자체가 앞의 두 가지를 갈라준다.
같은 자리를 도는 쪽은 적으려고 하면 쓸 게 없다. 몇 줄 쓰다가 “그냥 후회하고 있었구나” 하고 끝난다. 앞으로 가는 쪽은 쓰다 보면 항목이 나온다. 다음에 계약할 때 확인할 것, 시작 전에 정해둘 것 같은 것들.
감정이 항목으로 바뀌면 그날 밤은 닫힌다.
적어놓고 나서야 보인 것
이렇게 적어둔 걸 나중에 모아서 본 적이 있다. 크게 후회한 일이 두 건 있었는데,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었다. 하나는 큰 계약이었고 하나는 사업 하나를 접지 못한 일이었다.
적힌 걸 나란히 놓고 보니 원인이 같았다. 둘 다 더 빨리 결정했어야 하는 일을 끌었던 것이다. 판단이 틀린 게 아니라 시점이 늦었다. 몇 년에 걸쳐 두 번, 나는 같은 실수를 했다.
머릿속으로만 곱씹었으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두 사건은 업종도 규모도 상대도 달라서, 기억 속에서는 서로 겹칠 일이 없었다. 종이 위에서만 겹쳤다.
그래서 지금은 새 일을 시작할 때 “언제까지 어떤 숫자가 안 나오면 접는다”를 먼저 적어둔다. 두 번의 후회가 만들어 준 항목이다.
아직 안 닫힌 것
전부 이렇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숫자로 설명되는 실패는 항목으로 바뀐다. 그런데 어떤 일은 몇 년이 지나도 항목이 안 된다. 적어봐도 문장이 안 만들어지고, 그러면 그건 아직 내가 이해를 못 한 것이다.
그런 건 아직 서랍에 있다. 언젠가 적을 수 있게 되면 그때 적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