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에 아무도 하지 않은 약속이 적혀 있었다

회의를 받아 적는 사람은 그 회의에 없다.

손은 받아 적고, 귀는 다음 문장을 기다리고, 머리는 방금 들은 말을 줄이느라 바쁘다. 상대 얼굴을 볼 틈이 없다. 큰 회사라면 적는 사람을 따로 둔다. 작은 회사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적는 사람이 같다.

그래서 적는 일을 AI에게 넘겼다.

녹음만 올린다

회의가 끝나면 녹음 파일을 정해진 폴더에 넣는다. 한두 시간짜리 긴 회의도 그대로 넣는다. 짧은 음성 메모는 휴대폰에서 메신저 봇에게 보낸다.

그다음은 손을 대지 않는다. AI가 음성을 글자로 옮기고, 이게 회의인지 외부 미팅인지 통화인지 가려서 형식을 맞춘다. 문서로 만들어 공유 공간에 올리고, 다 됐다고 알림을 보낸다.

회의 중에 펜을 들 일이 없어졌다. 상대가 말할 때 상대를 본다.

통화는 전부 녹음된다

내 휴대폰은 모든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고, 그 파일이 저절로 컴퓨터로 올라온다.

처음에는 가장 최근 녹음을 알아서 집어 가게 했다. 금방 문제가 보였다. 거래처 통화 사이에 가족 통화가 섞여 있다. 가장 최근 파일이 내가 정리하고 싶은 그 통화라는 보장이 없다.

통화 녹음 폴더는 자동 선택에서 뺐다. 대신 상대 이름으로 부른다. 어제 누구와 한 통화, 하고 말하면 그 파일을 찾는다. 두 건 이상 걸리면 목록을 보여 주고 내가 고른다.

없는 약속

첫 미팅을 한 곳에 감사 메일을 준비할 때였다.

회의록에 이런 줄이 있었다. 다음 방문 때 현장 견학 제안을 받음. 메일 초안에도 그대로 들어갔다. 견학 일정을 알려 주시면 맞추겠습니다.

초안을 읽다가 멈췄다.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었다.

녹음을 글자로 옮긴 원문까지 내려가 봤다. 근거는 한 문장이었다. “다음에 가능하시면 칩다도 한번.” 칩다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음성 인식이 잘못 알아들은 단어였다. 요약하는 쪽은 그 빈칸을 그럴듯한 약속으로 채웠다.

같은 초안에서 상대 한 분의 직함도 틀려 있었다. 이사를 대표로 적었다. 회의록 참석자란에는 “성함 확인 필요”라고 쓰여 있었다. 초안을 쓰는 쪽이 그 경고를 건너뛰었다.

다른 통화 기록에서는 화자를 잘못 짚은 적도 있다. 나는 그 통화에 없었는데, 기록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요약과 원문

그 뒤로 선을 하나 그었다.

회의록은 요약이다. 근거가 아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서에 상대의 직함이나 “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옮길 때는 원문까지 내려가서 그 대목을 찾는다. 찾은 문장이 한 줄뿐이거나 알아들을 수 없으면 쓰지 않는다.

회의록에서 지우지도 않는다. 그 줄 옆에 근거 불충분, 대외 문서에 쓰지 말 것, 이라고 적어 둔다. 다음에 그 회의록을 여는 사람이 같은 데서 넘어지지 않게.

없는 약속을 우리가 먼저 적어 보내면, 상대는 우리가 그런 말을 했던가 하고 되짚는다. 첫 거래에서 그 한 번의 되짚음이 우리 기록 전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보내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녹음 버튼을 누른다

AI 회의록을 끊을 생각은 없다. 회의 중에 상대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값을 한다.

달라진 건 믿는 범위다. 무엇이 오갔는지 대강 떠올리는 데는 회의록을 쓴다. 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원문에 묻는다.

칩다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