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어 있는 이유가 일만은 아니었다
전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일이 남아서 앉아 있는 건지, 앉아 있고 싶어서 일을 남겨두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고.
몇 달 지나 다시 읽어보니 답을 알겠다. 절반은 뒤쪽이다.
낮에는 사람이 온다
낮에 나를 찾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전화가 오고, 현장에서 부르고,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하나를 붙잡고 있으면 다른 하나가 온다.
하루 중 제일 화가 나는 순간이 이때다. 할 일은 많은데 하나에 붙어 있을 수가 없을 때. 요청 하나하나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열 개를 반씩 하고 나면 저녁에 한 개도 끝난 게 없다.
나는 한 가지에 오래 파고들 때 제일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회사를 하면 그 반대로 살게 된다. 이걸 알고도 바꾸지 못한 지 오래됐다.
채워지는 쪽과 쓰이는 쪽
어느 날 두 가지를 갈라서 적어봤다. 나를 채우는 것과 나를 쓰는 것.
채워지는 건 혼자 있을 때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하나만 보고 있을 때. 반대로 생각이 생기는 건 사람을 만났을 때다. 사람을 만나고 온 날 막혀 있던 게 풀린다. 혼자서는 안 나오던 게 남의 말 끝에서 온다.
둘 다 필요하다. 문제는 하루가 쓰는 쪽으로만 차 있다는 것이다. 채우는 시간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도 받아 적을 자리가 없다.
집에 오면 아이 셋이 있다
퇴근하면 찾는 사람이 바뀔 뿐이다.
아이들 시간은 좋아서 보내는 시간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시간도 나를 찾는 시간이다. 막내는 하루 종일 하고 싶었던 말을 그때 다 한다. 셋이 번갈아 나를 부른다. 다 들어준다. 들어주는 동안 나는 계속 누군가의 것이다.
아이들이 잠들면 그날 처음으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그 시간에 노트북을 편다. 일을 하려고 깨어 있는 것과 혼자 있으려고 깨어 있는 것이 반씩 섞여 있다. 그래서 일찍 자라는 말이 잘 안 먹힌다. 일찍 자면 그날 혼자였던 시간이 없어진다.
모순이 아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말과,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한 사람 안에 있다.
나란히 적어놓고 보면 모순처럼 읽힌다. 아니다. 충전과 사용은 다른 동작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아이들 옆에 앉아 있어도 거기 있지 못한다. 몸은 식탁에 있고 머리는 낮에 못 끝낸 것에 가 있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남지 않는다.
혼자 있고 싶은 건 가족을 피하는 게 아니다. 가족 앞에 제대로 있으려고 그 앞에 비워두는 시간이다.
어디서 뺄 것인가
그 시간을 어디서 빼는가가 문제로 남는다.
지금은 잠에서 뺀다. 아이들이 잠든 뒤 한두 시간, 그것도 일과 겹쳐 있다. 잠을 줄여 만든 시간은 다음 날 집중에서 돌려받는다는 걸 안다. 알면서 매일 같은 데서 뺀다.
낮에서 뺄 수 있으면 제일 좋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아무도 못 찾는 시간을 미리 막아두는 것. 그게 안 되는 이유는 위에 다 적었다.
어디서 뺄지는 아직 못 정했다. 다만 이 시간이 사치가 아니라는 것까지는 정했다. 그걸 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