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그때 어땠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집은 어느 건물 2층이었다.
지하에는 단란주점이 있었다. 1층에는 미용실. 우리 집으로만 이어지는 문이 따로 있어서, 그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집이었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다.
삼십 년도 더 된 집인데 그 계단이 아직 기억난다. 냄새도, 창문으로 들어오던 빛도, 겨울에 차갑던 공기도.
이사가 잦은 집이었다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좋은 방향이었다. 집이 넓어지고, 방이 늘고, 아파트로 옮겨갔다. 아이 입장에서 이사는 그냥 새로운 계단과 새로운 골목이 생기는 일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방향이 바뀌었다. 넓어지던 것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 IMF였다.
나는 그때 그게 나라 전체의 일이라는 걸 몰랐다. 뉴스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집이 줄어드는 게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사장’이었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넓은 아파트에 살던 그 시기에 아버지는 음식점을 서너 곳 하고 계셨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사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우리 집이 넓어졌다 좁아진 건 아버지 사업이 그렇게 됐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안다. 가게가 서너 곳이면 그만큼 사람이 붙어 있었을 것이고, 그게 줄어든다는 건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의 나라면 그 시절 아버지의 장부가 대충 어떤 모양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매달 나가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들어오는 돈만 줄어드는 몇 달이 있었을 것이고, 어느 가게를 먼저 접을지 혼자 계산한 밤이 있었을 것이다. 접는다는 결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접기로 한 다음에도 정리할 것이 한참 남는다.
그 시간에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삼십 년 동안 안 물어봤다
물어볼 기회가 없지 않았다. 명절마다 마주 앉았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한 번도 안 물었다. 그때 어떻게 버티셨느냐고. 무서웠느냐고. 누구한테 말은 했느냐고.
안 물어본 이유를 이제 와서 짐작해 보면, 물으면 아버지가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굳이 다시 꺼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는, 나도 그 대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나는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사업하는 아버지를 둔 아이였다가, 사업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셋이다. 아이들이 지금 우리 회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지도 아직 못 정했다.
아이들 입장에서 지금 이 시기는 그냥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나날일 것이다. 삼십 년쯤 지나면 어떤 장면 하나가 남을 텐데, 그게 무엇이 될지는 내가 고를 수 없다.
내가 그 계단을 기억하듯이.
남는 것
아버지는 나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이 없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꺼내지 않고 있다. 물려주는 것 중에 이런 것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