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사람이 없다

닮고 싶은 사람이 없다.

존경하는 사람은 있다. 배운 것도 많다. 그런데 “저렇게 되고 싶다”가 어디에도 안 붙는다.

배우기는 한다

책은 계속 읽는다. 새로운 방식이 나오면 일단 가져다 써본다. 익숙한 대로 하고 있으면 제자리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남들이 좀 지켜보자고 할 때 먼저 열어보는 쪽이다.

거기서 얻은 문장은 쌓여 있다. 그중 몇 개는 실제로 회사를 바꿨다.

그런데 그 문장을 준 사람 쪽으로는 시선이 안 간다. 방법은 가져오는데 사람은 안 가져온다.

성공담에는 조건이 안 적혀 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다.

성공한 사람의 방법에는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가 안 적혀 있다. 그때 얼마를 들고 있었는지, 시장이 어느 국면이었는지, 옆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 어디까지가 운이었는지. 정작 결과를 갈랐을 것들은 책에 안 들어간다. 남는 건 방법뿐이다.

그 방법을 우리 조건에 그대로 넣으면 다르게 움직인다. 같은 문장이 어떤 회사에서는 살고 어떤 회사에서는 사람을 잡는다. 인원이 다르고, 자금 여유가 다르고, 고객이 우리를 부르는 이유가 다르다.

말해주는 사람이 살아남은 쪽이라는 것도 걸린다. 같은 방법으로 접은 회사는 책을 쓰지 않는다. 그 방법이 좋았던 건지 그 사람이 운이 좋았던 건지, 남아 있는 이야기만 봐서는 갈라낼 수가 없다.

그래서 통째로 따라가는 방식이 나한테는 안 맞는다. 한 사람에게서 하나씩 뗀다. 이 사람의 이 판단 하나, 저 사람의 저 습관 하나. 그렇게 모은 것은 조립품이라 이름이 안 붙는다. 누구처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대신 없는 것

이게 자랑은 아니다. 값을 치르고 있다.

롤모델이 있으면 자가 하나 생긴다. 저 사람은 이맘때 어디쯤 있었는데 나는 여기 있구나, 하고 대볼 수 있다. 나에게는 그게 없다. 판단이 흔들리는 밤에 대조할 궤적이 없어서,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계산한다.

누가 옆에서 “그건 이미 해봤는데 안 되더라”라고 말해주는 일도 없다. 안 되는 걸 내가 직접 해보고 알게 된다. 그 수업료를 몇 번 냈다.

닮고 싶은 사람을 정해둔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막힐 때 펼쳐볼 데가 있고, 흔들릴 때 붙잡을 문장이 있다. 나는 매번 백지에서 시작한다. 그게 자유롭기도 하고, 그만큼 느리기도 하다.

자를 다시 만들었다

그래서 자를 바꿔 만들었다.

남의 궤적 대신 내 숫자를 본다. 지난 분기의 나, 작년 이맘때의 나. 조건이 같으니 비교가 성립한다. 같은 달끼리 놓고 보면 나아졌는지 아닌지가 변명 없이 나온다.

가족과 보낸 시간도 같은 자로 잰다. 이건 마음먹기로는 안 세지고 달력을 세야 보인다. 지난달보다 늘었는지 줄었는지, 그 숫자는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방향은 따로 적어 뒀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 회사는 그걸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인데, 바쁜 계절이 오면 순서가 뒤집혀서 회사가 목적 자리에 올라와 앉는다. 그럴 때 나를 되돌리는 건 누구의 사례가 아니라 그 문장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 하나 생기면 이 길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아직 안 생겼고, 오늘도 내 계산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