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걸 해내고도 안 기뻤고, 작은 걸 잘 만들면 기뻤다
몇 달을 매달린 일이 잘 풀린 날이 있었다.
축하한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고 자리에 앉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 일이 아니라, 중간에 한 번 물러섰던 자리였다. 거기서 더 밀었으면 조건이 나았을 것이다. 다 끝난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그 장면만 계속 재생됐다.
기쁨은 그날 밤에도 안 왔다.
반대쪽
며칠 뒤에는 자료를 하나 만들었다. 숫자를 다 맞춰 넣고, 문장을 줄이고, 표를 다시 그리고, 색을 바꿔가며 맞췄다. 새벽에 파일을 닫으면서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규모로 치면 비교가 안 되는 일이다. 앞의 일은 회사의 몇 달이 걸려 있었고, 이건 파일 하나다. 그런데 만족은 이쪽이 컸다. 아무도 모르는 기쁨이고, 말하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말한 적도 없다.
몇 년째 이 패턴이다. 크게 잘된 일에는 아쉬움이 남고, 작게 잘 만든 것에는 기분이 좋다.
손에서 나온 것만 센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큰일은 결과가 내 손 밖에 있다. 상대가 있고, 타이밍이 있고, 운이 있다. 잘돼도 어디까지가 내가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잘된 일을 볼 때 내 눈에 먼저 보이는 건 내가 못 한 부분이다. 거기는 확실히 내 몫이니까.
자료 한 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이다. 잘 나왔으면 내가 잘한 것이고, 못 나왔으면 내가 못 한 것이다. 셈이 깨끗하다.
내가 만족을 계산하는 방식이 이렇다. 손에서 나온 것만 내 것으로 친다.
칭찬도 같은 자리에서 갈린다. 큰 건을 두고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디에 붙는 말인지 몰라 미끄러진다. 반면 자료를 넘겨준 사람이 지나가듯 “이 표가 보기 편하네요”라고 하면 그 말은 정확히 알아듣는다. 그 표는 내가 세 번 고쳐 그린 것이니까.
병인지 동력인지
즐길 줄 모르는 성격은 대체로 고쳐야 할 것으로 취급된다. 성취를 인정하라고, 스스로에게 관대하라고들 한다.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잘 안 됐다.
대신 다른 걸 봤다. “잘했다”와 “더 잘해야”가 나한테는 한 문장으로 붙어 있다. 앞부분을 떼면 뒷부분도 안 돌아간다. 작은 것에서 잘했다는 기분을 못 받으면 다음 것을 더 잘 만들 이유도 사라진다. 만족을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만족할 자리를 작은 데 두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새벽까지 이어질 때다. 표 하나를 다시 그리다가 두 시가 되는 밤이 아직 있다. 그때 만드는 건 더 나은 자료가 아니라 다음 날의 피로다.
그래서 하는 것
이제는 이 성질을 이용한다.
큰 결정을 하나 끝내면, 그 뒤에 손으로 끝까지 만드는 작은 것 하나를 붙여 둔다. 큰 건에서 못 받은 만족을 거기서 받아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것이다. 순서를 뒤집었을 뿐인데 며칠씩 가라앉는 일이 줄었다.
축하를 받으면 아직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고맙다고 답하고, 자리에 앉아 다음 파일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