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보낼 주말이 몇 번 남았는지 세어봤다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가족이라고 답한다.

빈말이 아니다. 회사를 하는 이유도 결국 그거다. 아이 셋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한다. 순서가 그렇다고 나는 믿어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달력을 봤다.

세어보면 안 되는 것들

지난 넉 달 동안 주말에 일한 날을 셌다. 생각보다 많았다.

저녁에 집에 있었지만 노트북을 연 날도 셌다. 그건 더 많았다. 몸은 거실에 있고 눈은 화면에 있던 시간을 “가족과 보낸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가 옆에서 말을 걸면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숫자를 여기 적지는 않겠다. 적고 싶지 않아서다.

남은 횟수

그러다 다른 계산을 해봤다.

아이가 열여덟쯤 되면 자기 세계가 생긴다. 주말에 아빠랑 뭘 하자고 하면 약속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때까지 남은 주말이 몇 번인지 세어봤다.

생각보다 적었다.

일 년에 오십몇 번, 거기에 남은 햇수를 곱하면 된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사람이면 사백 번쯤 남는다. 중학생이면 이백 번이 안 된다.

그중에서 내가 일한 주말을 빼면 어떻게 되는지, 그건 계산하다 말았다.

우선순위라는 말

우선순위는 말로 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내 입이 아니라 내 달력에 적혀 있다. 달력은 거짓말을 못 한다. 시간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가 거기 다 남아 있다.

내 달력에는 회사 일정이 빼곡했고, 가족과의 일정은 한 칸도 없었다.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일정은 상대가 있으니 적어야 하고, 가족 일정은 상대가 나를 기다려주니 안 적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순서를 뒤집는 방식이었다. 적힌 것이 이기고, 안 적힌 것은 밀린다. 매번.

그래서 적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을 달력에 넣었다. 회의를 넣듯이, 상대가 있는 약속처럼 넣었다.

거창한 계획은 아니다. 그 시간에 뭘 할지도 안 정했다. 다만 그 칸이 비어 있으면 반드시 회사 일이 들어온다는 걸 이제 알기 때문이다. 빈칸은 절대 빈 채로 남지 않는다.

몇 주 해보니 두 번은 지키고 한 번은 못 지켰다. 못 지킨 날에는 다음 주로 옮겨 적었다. 옮겨 적는 것까지가 규칙이다. 그냥 지워버리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남는 것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밤 열두 시가 넘었다. 아이들은 자고 있다.

고쳤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달력에 칸 하나 만든 게 전부다.

다만 이제는 안다. 가족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가족을 우선에 두는 것은 다른 일이고, 둘 사이의 거리는 달력을 펴보면 정확한 숫자로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숫자는 줄어들기만 한다.